각자도생의 시대, 교사도 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가 유행이 된 지 오래다.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주고, 후배는 선배를 밀어주던 기존의 직장문화가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하는 문화로 바뀌었다. 각자도생은 이런 변화의 바람을 타고 언젠가부터 체념처럼 씁쓸하게 사람들 사이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 같다.

조직문화에 있어 최근 유행하는 이 각자도생 문화는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치명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회식문화가 사라지고, 이른 바 꼰대문화가 점차 그 지위를 잃어가고 있는 부분이 대표적으로 바람직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선배는 곧 하늘이라 했던가!

반대로 이제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무엇을 강요하지도 않지만 자신만의 노하우와 그 동안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공유하지도, 전수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후배들이 선배들의 그런 노하우를 딱히 있는 지도 모를 뿐더러 애초에 부러워 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이런 부분은 교직사회에서도 전혀 예외가 아니다.

교사 각자가 알아서 하고, 간섭을 바라지 않는 각자도생의 문화가 이미 학교를 점령한 지 오래다.

특히, 교실에서 다수의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교직의 특성상 이런 문화는 더더욱 교사들 사이의 유대감을 떨어뜨렸고, 좀 극단적으로 말해 점차 동료교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학교 내 동료의식을 만들고 있다.

일반 직장에서라면 이를 그저 직장문화라 생각하고 말 일이고, 본인이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하면 그만일 일이다.

그러나 교사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교사는 사회를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을 아직은 미숙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이고, 그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 중의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가 공동체라는 개념이다.

정작 교사들은 조직 내에서 점차 공동체라는 개념이 최소한 재정립되거나 쇠퇴해 가는 중인데 아이들에게는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을 보다 강조해야 하는 시대의 아이러니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다. (교육과정에서는 이 공동체의식을 매우 중요한 인성교육요소로 보고 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이런 교사 조직을 점차 점령해가고 있는 각자도생 문화가 아이들에게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대채로 한 번에 단 한 사람의 교사를 교실에서 마주할 뿐, 여러 명의 교사가 어떤 사회를 이루고 어떻게 교사끼리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사실 어린 아이들은 그 부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교사 사회가 학생들에게 반면교사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동체의식이 강했던 과거에는 이런 일이 꽤 있었다. 내 학창시절에는 한 교사가 다른 교사의 뒤통수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때리거나, 교장이 재떨이를 던지거나, 여교사를 울리거나 하는 모습을 학교에서 종종 보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사 본인 스스로가 공동체에 대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방향을 향해 삶을 추구해 가느냐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언행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교사의 신념과 가치관에 조금씩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각자도생의 문화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각자도생이라는 유행어는 공동체 내에서 협업이나 팀워크의 반대편 의미로 치부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임승차를 원천 차단하고 각 개인의 자기생존력을 향상시키는 개인에게 있어서는 개인의 역량을 발전시키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바람직한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결국은 공동체 안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를 협력의 범위로 보고 어디까지를 각 개인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기준은 당연히 특별히 정해진 바 없고, 교사마다 다양할 수 밖에 없으며, 특히 개인적인 성향이 점차 세대를 거치며 강해지고 있으므로 이는 결국은 아무래도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나 유대감은 전보다는 못한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앞으로 협력의 범위는 점차 좁아질 것이고, 개인의 영역이 계속해서 커질 것이란 이야기다.

한편 위의 이야기는 학교에서의 상황을 예로 든 것인데 이런 학교 내 교사조직 분위기와는 달리 학교 외적으로는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의 유대와 역할은 오히려 강화되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지역교사노조를 예로 들 수 있다. 단위 학교에는 다양한 집단(예를 들면 교육행정직, 실무사, 공무직 등)이 모여있고 이들이 조화롭게 협력을 해야만 잘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 가운데 기존 교사 집단은 주로 자신들의 입지를 양보하거나 뺏기는 입장에 있었다.

그 이유는 한 가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으로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교사의 자질에 양보와 인내, 용서의 미덕 등 공동체의식이 강하게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하자면 불편해도 참고 조금 손해되도 넘어가는 식으로 대체로 진행되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교사는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묵인되거나 무시당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학교 조직이 더욱 느슨해졌기도 하고 교사의 교실 내 지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그 결과(대표적으로 서이초 사건)가 참혹하게 드러나자 교사들은 더 이상 눈치를 보거나, 양보하거나, 인내하거나, 용서하지 않기로 마음먹게 된 듯 하다.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 모습


교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교사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최전선에서 실천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지역 교사 노조이다. (교사노조는 전교조와는 엄연히 다른 단체임을 일단 짚고 넘어가자)

교사 노조는 이제 다른 집단에 대한 배려는 버려두고 오직 교사의 지위와 처우개선만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는 전체 교사들에게 번져나가기에 이른 것이다.

학교 내에서의 유대감은 약화되고 있는 반면, 특정 이슈에 대한 교사들의 응집력은 강화되고 있는 것이 현재 교사조직의 현재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그동안 눌려왔던 진정한 교사들만의 각자도생 문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교사들은 경험을 통해 교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덕목인 배려와 인내와 용서의 참담한 결과를 보았으니 교사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체와 관련된 전통적인 가치관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사들의 집단적인 가치관의 변화는 당연히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교실에서 학생들에게도 결코 배려하는 것만이, 인내하는 것만이 중요한 미덕이 아님을 가르치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종국에는 <각자도생> 이라는 큰 흐름은 직장과 학교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거스를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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