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이 의병에 자진해서 참가했던 이유(임진왜란)

의병이라하면 왠지 화력이 떨어지는 무기에 보호구조차 없는 농민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은 상당한 숫자였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당시 의병의 총병력수는 27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관군과 의병의 총 병력 수가 16만 8000명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백성들은 대부분 산 깊숙한 곳으로 전쟁을 피해 피란을 간 상황이었다.

그러던 그들이 점차 자진해서 의병에 참가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단순한 애국심 이상의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곽재우 장군상
곽재우 장군상


정부군의 무능함

먼저 정부 관군의 무능함이었다. 당시 조선은 무관이 아닌 문관이 총 지휘를 맡는 체계였다. 말하자면 전쟁과 전투를 전혀 모르는 자가 병력들을 통제하고 있었다는 뜻. 백성들은 이런 무능한 지휘관의 지휘를 받아 싸우다 헛되게 죽느니 차라리 신뢰할 수 있는 의병장 밑에서 싸우기를 선호하였다.

의병의 장점

의병은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관군에 소속되는 것보다 의병에 참가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유리한 점이 있었다.

먼저 위에 언급했듯이 무능한 지휘관에 의해 지휘를 당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신뢰할 수 있는 의병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의병장인 곽재우는 ‘천강홍의장군’이라 불릴 정도로 전술에 능통했는데 백성들은 군에 참가를 하더라도 이렇게 능력 있는 지휘관 밑에서 싸우기를 원했다.

두번째로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주변 의병으로 가는 것이 보다 유리했기 때문이다. 또 마을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주변의 지리와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던 그들에게는 전투에서 유리한 점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지방 양반들의 위기감

임진왜란 초 왜군에 의해 관군이 쉽게 무너짐에 따라 지방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지방 유생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재산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선두에서 직접 무기와 식량을 마련해가며 의병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위와 같은 백성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한 면이 작용했다.

정부의 인정

의병 수가 크게 늘어나게 된 데에는 당시 정부에서 의병을 정식 군대로 인정한다는 격문을 각지로 내보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결국 정부도 관군의 무능함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으며, 의병 봉기를 통해 기습과 매복으로 일본군을 공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물론 당시 정부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기도 했다.

생존을 위한 선택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는 전쟁의 승패보다는 생존이 중요했던 상황이 작용했다. 왜군들이 계속해서 주변을 점령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고을이 점령당하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울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왜군들은 식량 보급이 제한되었으므로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해야 했다. 이는 즉 조선의 곡창지대 점령이 필수였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백성들에게도 역시 해당 곡창지대는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절대 뺏길 수 없는 경작지였으므로 이를 지키는 것이 곧 가족을 지키는 일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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