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성과주의를 주제로 한 EBS다큐를 보게 되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과 통계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침투해 있는 성과주의에 대해 돌아보게 만들었다.
성과주의란?
영상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성과주의가 정확히 뜻하는 것이 뭐지? 라는 질문이었다. 성과의 높고 낮음에 따라 급여나 대우 등의 보상을 달리하는 주의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맞나?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성과란 정확히 어디까지의 범위를 말하는 거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성과주의라는 단어를 접한 것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제대로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면서 생각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성과주의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찾아보았다. 요즘은 AI가 정리를 잘해준다.

이렇게 개념정리를 마치고 다시 성과주의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성과라는 것 자체가 말하자면 정하기 나름인데, 그 성과를 무엇으로 할 것이며, 그것을 누가 정하며, 그 수치는 다시 어떻게 정량화하며 , 정량화 기준은 누가 정할 것인가? 라는 논란이 태생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방식이다.
종국적인 성과주의의 목적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해당 조직의 보다 나은 성과의 창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과주의에 대한 설문조사
제작팀은 성인을 대상으로 성과주의의 핵심질문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예 또는 아니오로 선택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통계로 내었다.
질문과 답변비율을 차례대로 보면 다음과 같다.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
- 예 37.9%
- 아니오 30.4%

어려운 환경의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역차별이다.
- 예 39.1%
- 아니오 26.8%

성과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
- 예 51.3%
- 아니오 16.6%

대기업 직원 임금이 중소기업 직원보다 높아야 한다.
- 예 50.9%
- 아니오 21.8%
질문이 다소 앞뒤 맥락없이 단도직입적이다. 설문조사 대상과 인원에 대한 정보를 보지 못했지만 대략적인 성인들의 성과주의 관련 질문에 대한 인식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답변의 격차가 매우 큰 질문들을 추려보면,
대기업 직원이 중소기업 직원보다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
성과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
위의 두 가지 질문이다. 즉, 설문 대상자들 중 다수가 성과에 따른 임금의 차등에 대해 동의하는 입장이며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임금을 더 받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전자의 성과에 따른 임금의 차등에 대해서는 그렇다치더라도 후자의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반응은 다소 의외이긴 했다. 추측해보자면 대기업은 중소기업보다 성과가 높다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6학년 학급을 대상으로 한 실험
이번엔 성과주의에 아직 물들지 않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과정과 결과가 소개되었다.
성과는 평가의 성적이다.
선행학습을 미리 한 학생들만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섞인 평가지를 준비하여 학생들이 풀도록 하고 이를 채점하여 점수로 정량화하였다.
그리고 이 점수에 따른 성과주의 보상을 적용하였다.
보상은 문화상품권이었고, 1등은 20만원, 2등은 12만원, 3등은 5.5만원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모두 5000원을 받았다.
1,2,3등만 막대한 보상을 받았고 나머지는 성과와 상관없이 동일한 보상을 받았다.
그 결과 아이들도 의견이 갈렸다.
한 쪽에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성적이 잘 나온 것이니 더 많이 주는 게 맞다.
한편에서는 다같이 열심히 했는데 성적에 따라 보상이 다른 것은 이상하다.
학생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지 토의하기 시작했고 결국 아이들은 모든 상품권을 수거한 뒤 모두가 똑같이 나누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로써 아이들은 모두 3만원의 문화상품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영상은 아이들의 소감들을 짧은 클립들로 보여주면서 마무리 된다.
그 짧은 대답은 공통적이었는데 요지는 이렇다
“성적에 따라 차등을 두더라도 적게 두었으면 좋겠다.”
나의 생각
실험의 오류
성과주의에 대해 우리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아마 이 다큐도 그런 비판적인 시각으로 성과주의에 대해 돌아보자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교훈을 아직 성과주의를 모르는 학생들의 시각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러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과주의 적용실험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3명을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같은 보상을 받았다는 점
-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을 받은 인원이 학급 전체에서 극소수라는 점.
교실의 대다수가 최하 보상인 5000원을 ‘동일하게’ 받았다. 차등보상을 받은 아이들은 3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교실에서 극소수이다.
내가 보기에 이 실험은 학생들에게 진정한 차등 보상을 하지 않았다. 성적대로 줄을 세웠다면 보상은 이 실험보다 세분화 되었어야 한다. 1등에서부터 순서대로 차등을 급간이나 순서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 진정한 성과주의의 적용이 아닐까?
이 실험에서 학생들은 성과주의 자체라기보다 편 가르기 즉, 흑백논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즉, 보상이 동일한 절대 다수와 보상이 극적으로 차이가 나는 극소수가 있다. 극소수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다수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즉, 다수가 소수를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아이들이 상품권을 다시 분배하는 것이 보다 자신에게 보다 이득이 된다. 전보다 보상이 적어지는 학생은 오직 3명뿐.
마지막에 1등을 해서 20만원을 받았다가 3만원을 받게 된 학생의 소감이 나온다.
아쉽긴 하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받았으니까 괜찮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일부러 실험을 이렇게 설계한 것일까? 라는 상상도 해보았다.
1등만 살아남는 상황을 실험에서 표현하려고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이 동일하게 5천원을 받은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리고 5천원을 똑같이 받은 학생들이 서로에게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끼는 대신 상위 3명에 대해 적대감을 갖도록 조장하는 면이 없지 않다.
실제 현실과 가까운 실험을 설계했다면 상위 3명은 극단적으로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이 맞지만 나머지 아이들도 현실을 반영한 차등 보상이 있었어야 했다. 실제 우리 현실이 그러하듯 말이다.
그렇게 실험을 설계하고 적용했다면 아이들의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 궁금하다.
결론
성과를 바탕으로 보상에 차등을 주는 성과주의의 효용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과 문제점들이 산재한 것도 사실이다.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잘 활용할까? 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단기적인 성과와 숫자를 원하는 집단과 조직에서는 성과주의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은근히 이를 조장하는 조직이나 집단이 많다. 그러나 이것을 아무렇게나 활용했다가는 구성원들의 협업을 저해하고 경쟁을 조장해 장기적으로는 조직과 집단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근데…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결국 성과주의에겐 죄가 없다. 성과주의를 활용하려는 사람과 조직에게 죄가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