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민원 창구를 단일화하여 이제 학부모는 담임교사에게 전화 또는 SNS를 통한 민원을 요구할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한다고 한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241062.html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다,
그러나 악성민원인은 전체 학부모 중 얼마나 될까?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는 전체 중에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주 일부의 악성민원 학부모를 막기위해 학부모 전체를 잠재적인 악성민원 학부모로 만들어 버린 것과 다름 없다.
대대수의 정상적인 학부모들은 그동안 유일한 소통창구였던 내 자녀의 담임교사와의 직접적인 소통의 창구를 잃어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핀셋 정책이 아닌 문제를 일반화하고 전체 적용함으로서 발생하는 부작용인 것이다.
그동안의 교육정책들이 이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인해 정책 추진에 의한 긍정적인 점이 무색해질 정도로 더 큰 부작용을 낳은 사례들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아동학대 관련 법의 제정이다.
자녀를 학대한 일부 부모, 일부 교사 등 이런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자들의 아동학대가 불거지면서 이를 원천하단하고자 아동학대 예방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는 모든 부모와 교사들을 모두 잠재적인 아동학대 가해자로 만들었다.
피해자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아동학대신고는 증거가 없이도 누구나 가능하게 되었고 심각하게도 그 신고에 대한 무고죄도 적용되지 않도록 추진되었다.
그래서 그 정책이 지금에 와서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는가?
아동학대신고를 ‘기분상해죄’라고 이야기할 만큼 이 정책으로 인해 부모와 교사는 정상적인 교육을 하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교사든 부모든 자녀의 잘못된 점을 고치려면 이제는 허용된 범위에서 해야 하고 남들이 아동학대로 신고하지는 않을 지 신경을 써야한다. 누구라도 신고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그 잘못의 크기 만큼 부모라면 교사라면 회초리를 들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잘못의 크기가 아무리 크더라도 말로 하되 그 마저도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곤조곤 말하는 게 유일한 지도 방법이 되었다.
대부분의 학생들과 자녀들은 조곤조곤 말해도 말을 잘 듣는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이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악용했고 이를 막을 수단이 부모와 교사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동학대를 막기위한 정책이 학교와 교사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일부 아동과 학부모로 인해 학교가 마비되고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되지 못하게 됨으로써 대다수의 아동과 학부모가 피해를 입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아동학대 관련 정책만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도 또 다른 대표적인 성급한 일반화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인권조례는 전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확산시킨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를 악용하는 학생들을 제지할 수단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서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학생의 교사를 대상으로 한 폭행, 성추행, 성폭력 등의 범죄가 발생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관련 기사 아래 참고
https://v.daum.net/v/20260122194927539

이 두 가지 정책들을 유심히 보면 일부에게 해당하는 사안과 그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전체로 확대 및 일반화하여 속해있는 집단 전체를 잠재적인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드는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정책이 추진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정신질환을 가진 초등교사가 안타깝게도 아무런 면식도 없는 학생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에 대해 사회는 어떤 정책을 내놓을 것인가? 교사 전체를 학생을 언제든지 살인할 수 있는 잠재적인 살인자로 만들어버리면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란 있을 수가 없다.
과거 코로나 시절처럼 원격강의라도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분명 교사에 의한 살인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완벽히 접촉이 차단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 낭비와 부작용들을 다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성급한 일반화로 인해 정책을 추진하면서 교육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부작용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아동학대 사건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아이들로 인해 아동학대 예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우리 사회는 많은 아동학대를 막은 대신 많은 것을 잃게 했다.
학생인권조례로 많은 학생들의 인권은 존중받았지만 한편 이를 악용한 학생들로 교육주체들은 더 많은 것들을 잃었다.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해 학교 민원 창구 단일화를 추진하면 교사의 악성민원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학부모와 교사의 정상적인 소통창구는 막힐 것이다.
정책들이 하나같이 문제점 부위만을 도려내는 핀셋 정책이 아니다보니 하나의 문제를 막기위한 정책이 또 다른 문제를 계속해서 낳고 있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한 문제에 집착하여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그 해결방안이 과연 제대로 된 해결방안인지 더 충분히 그리고 매우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새로 생기는 정책들은 늘 극히 일부분에 해당됨에도 마치 전체가 그런 양 추진되고 그 대가는 온전히 사회 전체가 감당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런 부분에 대해 더 민감해져야만 지금까지 해오던 실수를 만회하고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