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국어 : 허준과 과거제도 그리고 동의보감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는 매체자료에 알아보는 단원이 있다. 이 단원에서 영상매체의 대표자료로 과거의 드라마 ‘허준’의 일부가 발췌되어 있다.

때마침 5학년 2학기부터 한국사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는데 순서대로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사회교과의 한국사의 진도가 허준이 등장하는 국어 진도가 맞아 떨어지기도 한다.

허준은 동의보감과 관련하여 또 조선시대의 어의 중 한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위인들 중 한 명인데 그 원인에는 그의 파격적인 신분 상승에 있다.

그래서 당시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와 신분제 그리고 허준이라는 인물을 연관지어 정리해 보았다.

허준의 표준영정


과거제도

과거제도는 본래 중국 수나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광종 때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과거제도는 능력본연주의에 바탕을 둔 인재 채용제도이지만 알다시피 왕권 강화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신분제와 혈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에는 실력을 갖춘 신하를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것만큼 좋은게 없다.

조선의 과거제도

조선의 과거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시대의 과거는 식년시와 중간중간 비정기적으로 시행되는 별시 이렇게 구분된다. 식년시와 별시를 합하면 대체로 매년 과거시험이 열렸는데 과거시험은 대개 음력 8월 치뤄졌다고 한다.

물론 이 주기는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매년 열리던 과거제도는 17세기 후반부터 3년에 한 번 열리게 되었으며 18세기 중반부터는 시험대상이 서당생으로 한정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과거시험은 양반만 볼 수 있다고 오해하는 부분이다. 조선시대에는 천민만 아니면 모든 신분이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다만, 과거 시험 중 일부는 신분의 제한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중인들은 문과인 대과에 응시할 수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히려 중인보다 낮은 신분으로 여겨지는 평민은 대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 중인들이 볼 수 있는 이른 바 잡과 시험도 중인들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조선시대에는 중인에 대한 다소의 역차별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허준

허준은 서자이다. 서자는 양반과 양인 신분의 어머니를 둔 신분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용천부사를 지낸 양반가문의 허륜이었는데 허준의 할아버지 또한 경상우수사를 지냈다.

서자는 중인 신분이었으므로 허준은 문과에 응시할 수가 없었다. 물론 조선 후기로 가면서 중인들이 문과에 응시할 수 있던 시기도 있었으나 허준이 활동했던 당시에는 대과 응시에 제한이 있던 시기였다.

기록 등을 종합하면 허준의 집안은 서얼이라고 해서 교육에 있어 크게 차별을 하지 않는 집안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허준의 아버지인 허륜이 허준의 의학공부를 적극지원하여 여러 스승을 들여 의학을 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

선조 대의 관료이자 학자인 유희춘의 미암일기에 따르면 그가 허준을 이조판서 홍담에게 내의원에 천거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기록이 있다. 내의원에 천거되려면 실력만으로는 부족했고 집안의 배경을 보았기 때문에 당시 허준은 집안의 배경 덕을 보았다고 볼 수 있다.

허준이 내의원에 들어간 뒤 종4품에 이어 선조를 치료하여 호피를 받기도 했으며 1590년에는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며 당상관에 올랐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선조를 곁에서 모셨다고 한다.

1596년에는 세자 광해군의 천연두를 치료하여 종2품의 가의대부(현재의 차관급)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왕를 곁에서 보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후에 1604년 의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정1품 양평부원군에 제수되었다가 신하들의 반대로 인해 종1품 양평군이 되었다. 이후에도 보국숭록대부라는 정1품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문관 위계라는 이유로 백지화되었다.

참고로 조선시대 잡과 급제자는 정3품 당하관이 승진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벼슬이었는데 허준은 정1품까지 진급을 했으므로 상당한 특혜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조선왕조 100년 동안 잡과 급제자가 정1품을 달성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이러한 허준의 출세스토리가 당시 백성들에게도 회자되며 그의 이야기가 전국에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당시 허준이 모시고 있던 선조는 1608년에 사망하게 되는데 이를 어의였던 허준이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가게된다. 당시 선조는 거의 의료사고급에 가깝게 사망했기 때문에 허준은 당시 목숨이 위험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광해군이 허준을 비호하여 1년 정도의 귀양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동의보감

동의보감은 선조의 왕명으로 1596년 편찬되기 시작했는데 많은 허준이 독자적으로 편찬한 것이 아니었다. 시작 당시에는 태의인 양예수 등과 함께 공동편찬으로 시작되었는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다. 이것이 광해군 때에 허준이 다시 책임자로 임명되어 완성되기에 이르는데 편찬 시작 후 14년만의 일이다.

동의보감은 조선과 중국에서 확보할 수 있는 의서를 최대한 참고하고 여기에 내의원의 연구결과를 더해 완성되었는데, 오늘날에 비교하자면 일종의 의학백과사전이라고 볼 수 있다. 출판되자마자 조선을 비롯하여 청나라, 일본에서도 동의보감을 사갔다는 기록이 있다. 말하자면 당시 의학계의 베스트셀러였던 셈.

허준은 향년 76세 사망했는데 생전에 보류되었던 정1품 양평부원군 보국숭록대부에 비로소 추증되었다. 이 때에는 동의보감 편찬의 공으로 대간들도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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