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2학기 사회 고려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꼽히는 금속활자와 금속활자 인쇄본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에 관련한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다.
고려의 인쇄술
인쇄술은 통일신라시대에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고 기술이 축적되어 왔다. 통일신라시대인 751년에 제작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역시 당나라의 현종 때부터 목판 인쇄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목판 인쇄술은 인쇄에 있어 다양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고려에 이르러 금속활자가 사용되기에 이른다.
금속활자 또한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금속활자를 만들기 전 고려에서는 흥덕사라는 절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찍을 정도로 실용화가 되어 있었다.
고려의 인쇄술 발달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당시 고려의 책에 대한 지식의 확산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욕구가 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불교 경전을 남기려한 초조대장경이나 재조대장경을 보면 분명 종교적인 영향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속활자로 인한 인쇄술의 발달이 당시의 상당한 책의 보급과 대중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큰 이유로 학자들은 당시에 사용하던 문자가 한자였기 때문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즉, 한자로 찍힌 책을 아무리 인쇄술이 발달하여 찍어낸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백성들이 읽고 해석할 수 없었으므로 한계가 있었다는 시각이다.
결국 한자와 한문의 지식과 기술의 발전과 확산을 막는 하나의 벽이 된 셈이다. 이와 달리 서구에서는 금속활자를 사용하면서 지식의 확산현상이 대폭 일어나고 이에 따라 기술이 더욱 발달하게 되면서 세계의 주도권을 서방사회가 갖게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직지심체요절
금속활자 인쇄본 중 가장 오래된 직지심세요절은 독일의 쿠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 앞섰고, 중국의 ‘춘추번로’보다 145년이나 앞선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금속활자 인쇄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직지심체요절은 본래 승려 경한이 상, 하 2권으로 지은 책으로 1377년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청주의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고려에서 금속활자는 이 시기에 이미 대중화 되었으며 훨씬 더 오래전에 금속활자를 인쇄술로 활용하고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되기에 이른 과정을 살펴보자.
1886년 조선은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맺었고, 1887년 콜랭 드 플랑시가 프랑스를 대표한 외교관으로 당시 조선에 근무하였다. 그는 당시 다양한 조선의 고서와 문화재를 수집하였는데 직지심체요절 하권은 그가 수집한 조선의 고서와 문화재 중 하나였다.
그를 통해 프랑스로 건너간 직지는 1911년 앙리 베베르라는 사람이 경매로 구입하게 되었고, 이 앙리 베베르의 유언이 직지를 국립도서관에 기증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된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박병선 박사에 의해 1972년 발견되었다. 그녀는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유네스코가 후원하는 국제 도서 전시회에 전시할 책을 고르다가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