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사회 : 영조와 정조 수업참고자료 정리

5학년 2학기 사회 한국사 중 영조와 정조 관련 참고자료를 정리했다.

수원 화성

탕평정책

탕평정치의 본질은 왕권강화이다. 붕당으로 인해 주도권을 빼앗긴 국왕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 영조대에 이르러 탕평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외면적으로는 각 붕당간 골고루 신하를 등용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상을 보면 양측의 균형을 통해 왕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영조의 인재등용방식에서도 드러나는데 탕평에 동조하는 인물들을 위주로 등용하고 이들은 자신의 외척으로 삼으며 자신의 측근세력으로 만들었다.

이런 인재등용방식이 계속되자 붕당은 점차 정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영조가 최초에 목적한 바를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부작용은 존재했다. 영조의 비호 아래 성장한 영조의 외척들이 성장함에 따라 이들은 점차 기득권층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정조에 이르러 이러한 문제점은 숙제가 되었고 정조는 외척을 견제하면서 이들을 배제하는 것을 인사의 첫번째 원칙으로 삼았다. 이는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다. 붕당은 점차 쇠퇴하고 외척을 포함한 기득권층도 제어되면서 결과적으로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조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 되면서 국왕에게 집중되었던 권력이 순조에게로 이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이후의 세도 정치를 촉진하는 원인이 되었다.

규장각

규장각은 왕실도서관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사실 정조의 탕평정국을 타파하기 위한 일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규장각은 국왕 가까이에서 서적을 편찬, 간행,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 업무를 담당하는 관원들에게는 상당한 특권의 부여되었다. 먼저 일상록을 편찬하는 일을 이들이 주관하였고 과거에 급제한 관리를 대상으로 교육과 시험을 담당하기도 했다.

정조는 규장각 실무 담당 관원에 관직 진출이 막혀있던 서얼을 등용하였다. 이를 통해 중립적인 새로운 왕 측근세력이 탄생한 셈이다.

그러나 규장각 관원 세력 역시 정조의 사후 약해진 왕권에 의해 규모가 축소되었으며 이후에는 왕실 도서관의 기능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장용영과 수원화성

장용영은 정조가 장용위라는 국왕 호위부대를 창설한 뒤 이 규모를 확대하여 군영으로 발전시킨 국왕 직속 호위부대이다. 할아버지인 영조와 아버지인 장헌세자(사도세자)에 이르기까지 붕당의 영향력이 상당한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정조는 이들을 견제하고자 한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국왕호위부대를 창설하였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아버지 묘를 수원의 화산에 이장한 뒤 조정을 옮기기 위한 방안으로 축조된 요새이다. 정조는 수원으로 조정을 옮김으로서 비로소 당쟁을 끝내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정약용

정약용은 정조가 특히 아낀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한 일화를 재미있게 엮은 영상이 있어 좌표를 저장해둔다. 달빛 부부 라는 채널의 영상인데 꽤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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